작성일 : 09-04-16 11:09
주린자는 복이 있나니(3)
 글쓴이 : 신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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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믿음으로 잔치에 참여하다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창14:18)

종교 개혁자들은 안타깝게도 주님의 성찬에 관해 일치된 합의를 갖지 못했다. 그러나 오직 한 가지에서만은 분명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것은 믿음을 성찬의 본질적인 요소로 본 것이다. 믿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개혁자들 사이에 논쟁이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믿음이 본질적인 요소라는 것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비록 믿음을 강조한 종교 개혁이 중세 예배의 미신적인 성향을 바르게 교정했다 하더라도, 사실 믿음에 대한 종교 개혁자들의 견해는 협소하고, 심지어 개인주의적인 경향을 띠었다. 칼빈은, 만일 어떤 한 신자가 주님의 성찬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교제하기를 원한다고 할 때, 거기에는 반드시 믿음이 요구된다고 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믿음과 잔치의 관계가 훨씬 넓은 지평 속에 함께 놓여 있다. 믿음은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신다는 것을 신뢰할 뿐 아니라,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을 신뢰하는 것이기도 하다. 세상 가운데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것은 떡과 포도주에 함께 하나로 묶여 있다.

아브람의 이야기 중 몇 가지를 살펴볼 때, 우리는 이것에 대해 좀 더 충분한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아브람은 나그네 같은 유동적인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부름 받았지만 결국 하란에 머물러 있었다. 그 곳에서 자신의 아비를 떠날 것을 명령받았고, 마침내 여호와께서 주시기로 약속한 땅에 도착한다(창12:4-5). 하지만 그는 도착하자마자 또 다시 거처를 옮겼다. 근방 세겜 장막에서 벧엘과 아이 사이에 위치한 남쪽으로 거처를 옮겼다가 이후 더 남쪽인 네게브로 이동한다. 사실 그곳은 하나님이 지시한 땅의 변방에 불과하였다. 애굽에 체류한 이후 최종적으로 헤브론의 마므레 상수리 나무들이 있는 곳에 정착하기까지(13:8), 그는 우회하여 북쪽으로 거처를 옮겼다가 다시 이전에 거처하던 곳에 머물렀다(13:1,3). 창세기 12장은 분명히 이러한 여행담에 관한 것이다. 그렇지만 다음에 이어지는 13장의 기사는 그 여행담을 다른 형식으로 거꾸로 말한다. -모든 여행 이야기는 히브리서 기자에 의해 확증된다.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람이 믿음으로 “이방 땅에서와 같이 약속의 땅 안에서 외국인으로” 살았다고 증언한다(히11:9)

쉼 없는 방황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결국 아브람은 또 다른 시험들에 직면했고, 그 시험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약속의 신실성을 의심했다. 특히 기근은 아브람을 애굽으로 몰아갔다. 먼 이후의 일이지만 그의 후손들 또한 기근으로 인해 애굽으로 갈 것이다. 하지만 애굽에서의 체류는 그를 큰 부자로 만들어 주었다. 바로가 사래를 자기 집으로 데려갔을 때, 여호와 하나님은 재앙으로 바로를 치셨다. 바로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아브람을 서둘러 보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일로 아브람은 “양 떼와 소 떼와 암나귀와 수나귀와 남녀종과 낙타”를 애굽 왕으로부터 얻었다(12:16). 이런 방식으로 아브람은 애굽의 소유를 취했고, “짐승과 은금을 많이 소유한 거부가 되어” 약속의 땅으로 돌아왔다(창13:2; 출12:35-36 참고).

아브람이 약속의 땅으로 돌아왔을 때, 비록 기근은 끝났지만 그는 곧 조카 롯과의 갈등에 휩쓸리고 만다. 왜냐하면 그 땅이 두 사람의 양떼와 소떼를 평화롭게 먹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브람의 “출애굽”(exodus)은 이후 이스라엘의 출애굽처럼 가족 간의 다툼이 뒤따랐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을 것과 마실 것이 부족했기 때문에 모세와 승강이를 벌였던 것과 같이, 아브람의 사람들과 롯의 사람들 사이의 다툼 역시 음식의 결핍 때문에 일어났다. 일이 걷잡을 수 없이 되고 또 모욕을 당하기 전에 아브람은 지혜롭고 평화적으로 분가를 선택했다. 롯은 더 좋은 곳인 요단 전역의 땅을 선택했다. 그 곳은 온 땅에 물이 넉넉하여 … 여호와의 동산 같았다(13:10).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그 땅은 그러한 명성에 어울리지 않았다. 주님께서는 복과 소유를 약속하시면서 아브람을 하란에서 부르셨다. 구약 성경에서 약속의 땅은 이스라엘의 부요함의 원천이었고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었다. 그러나 정작 아브람이 발견한 땅은 기근이 심했고 두 족장이 함께 살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곳이었다. 그런 땅에서 어떻게 한 사람 아브람이 아버지로서 “큰 나라”를 먹이는 것이 가능할까? 아브람은 가장 비옥한 땅에서 고립되었을 뿐 아니라, 광야에서 그만 나그네가 되고 만 것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갑자기 극적으로 변한다. “에덴”안에서 살겠다는 롯의 선택은 어리석은 것으로 드러나고 말았다. 이는 소돔이 매우 타락한 에덴이었음이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롯은 그 지역을 지배하는 세력인 엘람 왕 그돌라오멜에 대항하는 혁명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 서 있게 되었다. 결국 소돔과 고모라 두 도시는 연이은 전쟁에서 패했고, 그돌라우멜은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갔다(14:11-12). 아브람은 롯이 포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그네보다는 정복자와 같이 행동했다.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그가 집에서 기르고 훈련한 자 318인을 데리고 북으로 추격해 갔다는 사실이다. 유능한 군사 전략가로서 아브람은 그의 군대를 나누어 그돌라오멜 군대를 기습 공격했다(14:14-15). 이로써 아브람은 그 땅에서 그돌라오멜의 지속된 압제를 깨뜨리고, 롯과 그의 재물과 소돔의 부자들을 회복시켜 주었다. 이방인이었던 아브람이 해방자 아브람이 된 것이다. 전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브람은 떡과 포도주의 선물을 가지고 마중 나온 신비스러운 인물인 멜기세덱을 만나게 된다. 이 사건이 중요한 것은, 아브람이 그 땅에서 처음으로 먹고 마시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아브람의 정복으로 말미암아 기근과 죽음의 땅이 풍요의 땅, 밀과 포도주로 가득 찬 땅이 되었다. 멜기세덱이 아브람에게 “왕의 골짜기”(14:17)에서 이 음식을 제공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아브람의 잔치는 그의 승리를 축하하는 것이며, 그 땅의 주인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한 것과 같았다.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을 건너기 위해 모압 평지에 장막을 쳤을 때 이 이야기를 기억함으로써, 그 땅이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것과 같이 풍요로운 땅으로 입증되리라는 소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들의 조상 아브람처럼 궁창의 별과 같이 높아질 것이며, 가나안으로부터 야곱을 몰아냈던 기근이 잔치로 변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롯과 같이 우리도 부패한 도시의 시민으로 이방 세력의 포로가 되었지만, 아브람의 자손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종삼은 자로부터 구출해 주셨다. 그는 우리를 광야에서 에덴으로 향하게 해 주셨으며, 왕의 골짜기에서 잔치를 축하하는 왕자들과 공주들로 보좌에 앉혀 주셨다. 그는 자신의 십자가와 부활로 결정적인 승리를 얻으셨다. 주님의 성찬에서, 떡과 포도주는 주님이 얻으신 승리의 중심에 있는 기둥 역할을 한다.

승리의 잔치를 축하하는 것은 너무 때 이른 것처럼 보인다. 마지막 주님의 성찬 때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 중 한 사람에 의해 배신당하고, 체포되고, 비방적인 고소를 당하고, 부당하게 신문을 받고, 고문당하고, 결국 십자가형을 선고 받는다. 오늘 우리 또한 교회 안에서와 세상 가운데서 매일 우리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고집스러운 죄를 뿌리 뽑기 위해 씨름하거나 또는 사회의 구조적인 악과 투쟁할 때, 세상은 정원이라기보다는 여전히 황폐한 광야와 같다고 생각하게 된다. 아마도 현대의 교회들은 이러한 이유 때문에 주님의 성찬을 축하하는 것을 피하려고 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 땅이 우리의 소유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브람의 승리의 잔치는 결코 때 이른 것이 아니었다. 비록 그의 자손들이 몇 세기 동안 그 땅을 정복하지 못할 것이었지만, 아브람은 하나님이 죽음으로부터 생명을 주시는 부활의 주가 되심을 믿었다. 그는 현재 그 땅이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 하더라도 믿음으로 정복자의 식사를 그 땅에서 취하였다. 모든 기독교인들은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줄 알지어다”(갈3:7)라고 한 바울의 말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 뿐 아니라, 또한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궁극적인 승리를 축하해야 한다는 진리를 붙잡아야 할 것이다.

신재형 09-04-16 11:22
 
성찬은 때 이른 잔치입니까?
어려운 환경에 고정되어 있는 우리의 눈을 돌려
성찬 속에 약속된 '승리'를 보도록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옵소서!!
신재형 09-04-16 11:28
 
성찬 안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결국 복음으로 온 세상을 완전히 정복하실 것을 기대하며,
우리 역시 '정복자의 식사'를 취하며 그 전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궁극적인 승리를 믿음으로 축하하기를 기도합니다~